공지사항

2019.03.13 23:52

기천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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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이란 무엇인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아니하고 무게도 형체도 이름도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기천이라 하느라.

 

우리민족의 전통문화들 중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해 오면서 민족의 숨길구실(우리는 그것을 지킴이라고 부른다)을 해오는 것들이 많다. 먹거리가 그렇고, 입을거리가 그러하며, 즐기고 살아가는 것들이 또한 그러하다. 이러한 것들 중에 우리들의 정신을 지키고 몸을 지키며 가족들과 민족성원들을 지키는 法과 이치가 있었으니 혹자는 그것을 수련법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무술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이름들은 아주 후대에 붙여진 이름들일 뿐이고 그 자체가 생활이자 삶이었던 옛시절에는 이름이란 필요조차 없었다. 이렇게 있으되 이름도 없고, 존재하되 형체가 없으며,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것이 있었으니 이를 뒷날 기천이라고 하였다.

기천을 형용하는 많은 용어들이 있다. 산중무술, 전통무예, 민족선도, 민족수련, 전통무학, 심신수련법 등등이다. 그러나 어느말도 기천을 다 표현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천인의 수련자가 토하는 수련소감에는 천인의 다양성이 내포되고 만인의 수련기에는 만인의 각기 다른 감개가 표현된다.

기천을 굳이 구분하자면 道學. 丹學, 武學, 藝學, 活命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기천이 몸수련을 통해서 참되고 바른 길을 찾는다는 점에서 도학이다. 기천이 몸과 마음의 올바른 이치를 궁구하고 따른다는 점에서 단학이다.

기천이 절정의 무예를 익히고 구사한다는 점에서 무학이다. 기천이 몸과 마음으로 엮어낼 수 있는 아름답고 힘찬 몸짓과 소리는 예학이다. 기천의 활인술은 가히 한봉우리를 이루니 이 또한 우리의 큰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를 한다고 해도 그것들은 보이는 기천보다 훨씬 더 큰 보이지 않는 기천을 훼손할 염려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도학이라는 말이 도를 추구하는 깊은 이치를 얼마나 설명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우며 단학이나 무학이라는 말이 기천의 그 커다란 뜻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함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기천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낀 사람이 그것을 예술이라고 표현함에 만족할지, 기천활명법의 신통함을 지켜본 사람이 이름이 합당하다고 생각할지 의문이 든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부분에 대한 서술은 우리 수련자들에게는 일종의 금기사항이다. 따라서 수련을 통하지 않고, 전할 방법은 없다. 또한 그것을 말이나 글로 전할 이유도 없다. 단지 이러한 서술자체를 생략하지 않음은 여기 적힌 글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다.

 

 

 

말이나 글에 집착하지말고 몸으로만 수련하라(氣天道學의 원리)

 

기천을 몸으로 닦는 도라고 말한다. 또한 몸으로 중용의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라고도 한다. 몸수련을 통해 도의 길을 간다는 것이 매우 낯설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道로 통하는 길은 마음수련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는 생각들을 하여왔기 때문이다. 대개의 종교적 수련방법은 그렇다. 그러나 기천은 몸수련을 통해서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음을 제시한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몸을 마음의 하위단위로 보거나 마음으로 이르는 통로정도로 여긴다. 그래서 몸수련은 하나의 예비수련이요, 마음으로 가는 통로를 여는 준비단계정도로 여긴다. 이에 반해서 기천은 몸과 마음을 실질적인 하나로 여긴다. 몸은 집이자 그릇이고, 마음은 거기에 담긴 물이다. 집을 떠난 사람이 오래 살 수 없으며 그릇을 떠난 물이 흩어지고 말 듯,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일 때 온전한 생명이 되는 것이다.

몸을 바르게 닦으면 마음 역시 바르게 된다. 몸을 닦아서 마음을 정히 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을 닦고 수행함에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일지라도 그 근본은 몸을 중용으로 만들어가는데 있다. 몸이 치우치면 곧 마음도 치우치니 그것이 병도 되고 邪도 되는 것이다. 기천수행은 그 중에서도 몸의 중용을 먼저 이루어가므로 마음의 중용을 찾아가는 수행방법이다. 몸수련은 말이나 글이 갖는 한계와 오류를 겪지 않는다. 몸수련은 말이나 글이 뛰어넘지 못하는 벽을 넘게해주며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강력한 힘이 있다. 몸 수련은 그 깨달음의 결과를 말이나 글이 아닌 체험으로 전할 뿐이다.

몸수련은 우리를 이끌어가는 방향타가 있다. 몸과 마음의 깨달음이다. 깨달음에는 크고 작음이 있고 많고 적음이 있으나 그것들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그러한 깨달음일 뿐이다. 일단 수련자가 크던 작던 깨달음을 얻게 되면 몸수련은 자기 나름의 방향을 얻게 된다. 그것은 더 큰 깨달음으로 나를 이끈다.

 

 

 

 

 

내가신장. 그 고통과 역근의 원리(氣天丹學의 원리)

 

기천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내가신장이야말로 기천의 정수라는 말이다. 다음은 어떤 수련인의 말이다.

“이 자세는 수행하기 무척 힘든 자세이다. 체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5분을 버티기 힘들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땀 흘려 이 힘든 자세를 해야하는가? 참기 힘든 고통 속에서 시간, 마음의 욕망과 싸우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고통은 그렇게 생각하기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다.

왜 시간이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는가? 시간은 항상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데 이 자세를 취하는 동안에만 시간이 긴 것 같이 느껴진다.

시간은 마음의 흐름이라, 길고 짧음은 그 마음에 달려있다. 또한 선조의 지혜로운 배려로 이 자세를 취하면 몸에 이상한 힘이 생기게 된다. “

이 글에는 내가신장의 원리가 자세한 체험을 통해 그대로 나타나 있다. 고통과 역근의 원리가 그것이다. 기천수행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그 원리가 바로 고통과 역근이다.

고통은 사람을 비상하게 강하게 한다. 신체적 고통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고통이 전신의 모든 부분들에게 몸과 마음이 비상상태임을 선포하고 특별히 노력해서 정상상태가 될 것을 지시하는 것이다.

易筋은 기를 발생시키고 일정한 경로를 통해 단전에 집결하도록 하는 자세이다. 역근 중에서도 가장 전신의 기를 잘 발생시키고 잘 모이며 잘 운행하도록 고안된 자세가 내가신장이다. 이 자세 하나로 몸과 마음의 건강은 물론 깨달음의 경지에 까지 오를 수 있다.

기천단학은 복잡한 이치를 말하거나 어려운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간단명료하고도 쉬운 방법이며 확실한 방법으로 건강으로 가는 길을 이끈다. 이것이 기천의 단학이다.

 

 

 

 

 

 

흐름 속의 집중(氣天武學의 원리)

 

기천의 무예를 무학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 원리가 너무도 심오하며 그것이 담은 내용이 너무 크고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예가 천시당하고 불필요하다고 까지 말해지는 현대에 오히려 더욱 그 가치가 돋보이고 더욱 쓰임새가 무궁한지도 모르겠다.

“원이 흐르다 멈추는 곳에 최대한 힘을 집중해서 공격하라.

공격은 흐르는 원 속의 한 점에 대한 순간적인 집중이다.

순간적 집중이 고정되어서는 안된다. 원만한 집중 속에 흐름이 이루어진다.

 

흐름의 이치는 물(水)의 본성이요, 집중의 이치는 불(火)의 본체라.

 

집중에는 마음의 집중과 신체적 집중, 행동의 집중 세가지가 함께 일치할 때 모두 집중된다.

마음집중의 요걸은 定에 있고 힘의 집중의 요결은 精에 있다.” (‘精氣神一’ 1976. 7. 11에서 인용)

기천무학의 요체가 흐름과 집중 속에 있음을 전하는 구절이다.

“기천문은 우리나라 고래로부터 수행하여오던 주요한 무예의 하나였다. 그 역사는 가장 오래된 성조 개천시기때부터인데 때때로 성쇠가 있었으나 우리 조상들의 무인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기천 흐름의 역사’ 1983. 8. 23에서 인용)

기천무예가 우리 조상들의 상무정신과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그 연원은 단군시대에 까지 소급하고 있음을 밝히는 글이다. 이 글에 따르면 기천무학의 흐름은 우리 무예전통의 중요한 흐름을 이루고 있음도 나타내주고 있다.

기천은 무학이 기술로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道義를 내포해야만 공이 쌓인다.

“검법, 창법, 권법 등은 원래 전투할 때에 적을 제압하고 자기를 수호하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하여 창작된 것이나 그와 동시에 심신을 연마하고 정신을 수양하여 忠君愛國의 사상과 신의, 예절, 용기, 침착, 인내, 진취성 등의 재덕을 함양하는 것이기도 한다. 그런고로 기술로서만 말한다면 手法, 身法, 步法 등의 術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이 기법은 심연한 道義를 근원으로 한 바, 도의가 없으면 功이 생기지 않는다.”

“어떠한 기법이던지 정신을 넣지 않는 법은 생명이 없는 것이나 기천무는 기법의 생명력 뿐 아니라 무도인의 인격과 倍達민족적 정신을 기초로 하는 大國家的 血脈이 포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흐름 속의 집중’이라고 하는 기천무예의 원리는 결국 그 근원이 배달민족적 정신과 혈맥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예가 춤이 되고 건강이 되며 궁극적으로 일상생활이 되어온 우리 배달민족의 정신적 혈맥의 한 부분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부드러움이 능히 감함을 이기느니라(氣天藝學의 원리)

 

“手手華英에 步步飛雲이라(손 씀씀이는 화려한 꽃봉우리요, 걸음걸음은 나르는 구름이라)”

기천무예의 아름다움의 이치를 설명하는 氣天銘의 구절이다. 기천의 수를 함에 있어서 손 씀씀이는 꽃과 같이 하고 걸음걸이는 나는 구름처럼 하라는 가르침이다.

“氣武天然이요 一態美儼이라(기천의 무예는 하늘과 땅의 흐름을 그대로 따름이니 그 한 자세는 아름답고도 장엄하도다)”

기천의 흐름과 자세는 허실이 없는 엄함이 있어야하면서도 꽃이나 구름처럼 아름다움도 갖춰야한다는 가르침이다.

기천의 흐름을 지켜본 사람들이 기천舞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기천의 흐름은 고구려와 발해의 기마민족적 춤전통을 이어받았다고도 평한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의 역사가 활을 메고 말을 타며 벌판을 질주하는 고구려와 발해인들의 진취적 기상과 용맹성을 이어받고 있다고 자부한다.

택견협회의 이용복 부회장은 기천의 공연을 보고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춤인가, 무술인가로 화제가 되고 있는 택견보다 훨씬 춤적요소가 많은 것이 기천문이다. 이것은 작년 서울무용제에서 대상을 탄 ‘밀물현대무용단’의 작품이 기천舞를 응용한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잘 설명이 된다.”

기천의 흐름들이 춤으로 잘 표현되고, 전통음악과 잘 조화되며, 우리의 정서를 쉽게 표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박사규 문주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한번은 단군할아버지 초상 앞에 섰는데 그 분의 영감이 물밀 듯 밀려들어와요. 그것을 그대로 몸짓으로 표현해내려고 움직였지요. 그것이 품이지요. 또 어떤 가락이 흐르면 그 가락에서 어떤 인생이 느껴지고 그런 느낌을 갖고 수련을 하듯 동작으로 엮어갑니다. 그러면 그것이 춤이 됩니다. 어떤 상황을 표현하는 특정한 동작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먼저 감정이입이 되면 모든 동작을 그 감정에 맞춰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지요.”

기천이 춤으로 표현되고 음악과 쉽게 어울어지는 이유는 수련이 자신을 쉽게 객관화시켜주는 힘 때문이다. 수련은 자신의 좌절과 흥분, 관조가 가능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에 방금 전의 그 감정들을 관조하면서도 표현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수련은 사람들이 일상사에서 느끼는 수많은 좌절과 분노, 처절함과 수치심, 공포심과 상실감 같은 것들을 객관화시키고 관조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사업가가 부도를 맞아 좌절할 상황인데도 수련을 통해 오히려 먼 앞날을 보면서 자신을 재정비하고 새 출발하는 계기로 삼을 생각을 갖게하는 경우 같은 것이다.

 

 

 

 

 

바위 속에 돌꽃을 피우니(氣天活命法)

 

모든 무예에는 거의 반드시 자가치료술이 따른다. 기천은 그런 자가치료법을 활명법이라고 부른다. 활명법의 요체는 자신의 면역력을 최고도로 증강시키는 것이다. 대개의 기천인은 자신의 질병이나 증상들을 수련에 의해 스스로 고쳐본 경험들이 있다. 이 때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이 단배공, 내가신장, 육합단공, 개운기공 등이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면역력을 최고도로 증강시켜서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길이다. 정신적인 것이 원인이 되는 류의 질병에 대해서는 입정의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 또한 정신적 면역능력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활명법의 또한 종류는 發功에 의한 치료인데 오랜기간 수련에 정진한 수련자들의 경우에는 몸에서 강력한 기가 방출된다. 이러한 기는 치유능력을 갖는다. 이 경우 발공자의 능력과 함께 중요한 것은 상호간의 깊은 신뢰관계이다. 발공에 의한 치유의 경우는 타력의존이므로 효과는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타력에 의해 도움을 받더라도 그것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려면 스스로 수련을 하여야 한다. 일반적인 약물을 사용하더라도 수련은 그 효과를 더욱 고양시켜준다.

기천鍊丹法을 하면 心志가 아랫배에 다북차고 혈액순환이 잘되며 모든 기관의 기능이 왕성해지고 두뇌가 명석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이렇게 되면 사기가 침노치 못해서 천강의 건강체가 된다.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해 生과 死를 초월하라(氣天心法)

 

기천문에 입문할 때에 쓰는 입문서에 이런 문구가 있다.

“기천문인으로써 개인적인 사소한 감정에 공을 남용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대의를 위한, 천하를 위한 것에 공을 쓴다면 능히 가르칠만 하도다.”

기천문과 기천인은 대의를 앞세운다. 기천문의 대의란 민족의 얼을 지키는 것이며 조상의 뿌리를 지키는 것이다. 말과 글로 하는 대의가 아닌 몸으로 실천하는 대의이며, 명예와 부를 초개처럼 여기는 대의이며, 행함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대의이며, 역사의 분수령이 되는 시점에 반드시 나타나서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대의이다.

그래서 기천의 조사들은 말하기를

“심신을 단련하고 정신을 수양하여 충군애국의 사상과 예절과 용기 등의 제덕을 함양하는 것”이 대의를 이루는 길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면 기천문의 대의는 정확히 무엇인가? <흐름의 역사>라는 글에 이러한 언급이 있다. “기천武는 武道人의 人格과 培達民族적 精神을 기초로 하는 大國家적 血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국가라는 말은 요즈음 듣기 힘든 말이나 분명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우리민족의 사람과 땅 대부분을 아우르는 대통합국가라는 말임이 분명할진대 피가 끓고 살이 떨리는 말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기천을 수행, 연마함으로써 대국가의 무도인으로서의 개인적 품성을 형성함과 함께 그로써 민족의 얼을 내 안에 지킨다는 것 역시 너무 영광스럽고 분에 넘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